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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청하는 기도 |
조영자 집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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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필요로 하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육신의 안락과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먼저 의․식․주 문제가 해결되어야 하고, 정상적인 사회참여 활동과 정서적인 안정, 나아가서 더 나은 삶을 영위하기 위한 욕구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도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고, 필요로 하는 것들을 그들의 의지와 노력여하에 따라 구할 수 있다고 믿고 분주히 뛰어다니며 찾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육신의 일들과 우리를 둘러싼 환경의 개선을 어느 정도 이룰 수가 있지요. 그러나 인생의 험난한 항로속에서 파선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으며 정신과 육체의 고통에 짓눌려 일어서지도 못하는 자가 수없이 많음을 우리는 종종 목격합니다. 현대의 의술로도 고칠 수 없는 수많은 질병 얽히고 섥킨 가정의 문제들, 사회와 국가의 어려운 난제들, 갈수록 심각해져가는 지구촌의 문제들, 인간의 힘만으로 불가능한 이 모든 갈등속에서 우리는 절망하며, 고통하며 살아 갈수 밖에 없는 존재라고 포기하겠습니까?
에덴동산에서부터 부조화로 출발한 인간들의 삶속에 티끌이 날음같이 고난의 재들이 생겨날 줄 미리 아시고 일찍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주셨고, 제자들에게 가장 모범적인 기도 주기도문으로 일상의 기도를 가르쳐 주시면서 불가능을 가능으로 이끌 수 있는 기도까지 일깨워 주셨습니다. 우리 힘만으로 이룰 수 없는 일을 구할 때는 일상의 기도를 넘어서 강청하는 기도를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누가복음 18장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한 과부가 자기의 원수에 대한 원한을 풀어달라고 불의한 재판관에게 귀찮을 정도로 부르짖습니다. 그 재판관은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고 과부의 원한을 풀어줍니다. ‘불의한 재판관이라도 그 원한을 풀어 주었거늘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오래 참으시겠느냐?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이 말씀은 우리에게 믿음의 문제를 다시 일깨워줍니다. 믿음의 행위가 곧 기도이며, 믿음을 가지고 강청하는 기도(밤.낮 부르짖는)를 하나님은 외면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어도 산을 옮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믿음을 가지고 강청하는 기도란 어떤 기도인지 기독인으로서 깊이 생각하고 실천해 볼만하지 않겠습니까? 출애굽기 30장 34절에 소합향과 나감향, 풍자향과 유향 등의 향품 이름이 나옵니다. 요한계시록 8장에는 향은 성도들의 기도이며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보좌 앞으로 올라간다고 하였습니다. 구약시대에 성소에서 가장 거룩한 회막안 증거궤 앞에 놓여 있었던 향, 지금도 향과 같은 우리의 기도를 하나님이 가장 원하시며 거룩하게 여기신다는 것을 말씀을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소합향은 어떻게 만들어 질까요? 소합향은 나무가 뜨거운 태양의 열을 받아 저절로 나오는 진액이라고 합니다. 기도에 비교한다면 하나님을 향한 우리 영혼의 간절한 갈망이며,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 하나님을 향한 헐떡이는 우리의 숨결입니다. 다음은 나감향이 있습니다. 나감향은 동물의 껍질을 벗겨 가루로 만든 향이라고 합니다. 즉 우리의 상한 심령의 기도, 통회자복하는 회개의 기도 시편34장 18절에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권하시는 도다’ 상한심령 회개의 기도를 기뻐 받으신다고 하셨습니다. 또 풍자향은 고무나무와 같은 나무의 진액을 짜서 만든 향입니다. 나무의 진액을 짜는 것과 같이 우리의 진액을 짜내는 기도, 눈물과 땀으로 얼룩진 기름을 짜는 듯한 기도, 예수님이 몸소 본을 보이신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와 같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향품들을 동일한 중수로 유향에 섞어 회막안 증거궤 앞에 놓아 둘 향을 만들라고 모세에게 지시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유향에 섞는다는 것은 나의 생각과 욕심대로가 아닌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기도, 참된 기도를 드림으로서 성화의 과정을 경험하게 되고, 영적인 성장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도 땀방울이 핏방울처럼 보이듯이 기름을 짜는 듯한 기도를 드리면서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이루어주옵소서’ 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신 후 모세에게 지시하여 성소를 만들게 하시고 향품의 이름을 정하여 향을 만들라고 하셨듯이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기도가 이 향품을 만들어내는 과정과 같을 때 하늘보좌까지 움직이는 기도가 되지 않을까요? ‘지성이면 감천’ 이란 옛말의 뜻을 알 것 같습니다. ‘이렇게 힘든 기도를 어떻게 할 수 있느냐? 차라리 포기하는 편이 낫지 않느냐’ 라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인간은 어차피 영적인 존재로 지음받았기 때문에, 부단히 하나님과 영적대화를 나누고 그 사랑속에 살아가도록 만들어진 피조물입니다. 이 교재가 영혼의 호흡이며, 이 호흡을 중단하는 자는 육체는 숨기고 있으나 영혼은 질식상태에 빠져 있다고나 할까요. 평소에 쉬지않고 영혼의 호흡을 하고 있는 자라도 때로는 시냇물을 찾아 헐떡이는 사슴처럼 창조주를 향해 강청하는 기도를 올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항해가 늘 안전한 것만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가정이나 자신의 문제로 가슴을 치고 통곡하고 싶을 때가 없지 않습니까? 풍랑이는 바다 위에서 예수님께 구원을 요청한 제자들처럼, 우리는 때로는 위급한 일을 만나 부르짖고 강청합니다. 도저히 불가능한 일을 이루기 위해서도 강청하는 기도를 올립니다. 그러나 오직 하나님 뜻에 합당한 참된 기도만이, 진실되고 간절한 기도의 향이 하늘보좌에 상달되어 응답을 받게 됨을 우리는 기억해야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