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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가 꽃피고 다뉴브강이 흐르는 동유럽을 돌아보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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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욱 집사 (청년2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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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민들레 고장을 출발하면서
먼저 오늘까지 건강하게 지켜주신 주님의 은혜를 깊이 감사드린다. 어느덧 유난히도 비가 많고 태풍으로 엄청난 피해를 주었던 여름도 지나고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서늘한, 결실의 계절을 맞이하게 되었다. 한해를 되돌아보면 감사한 일이 너무나 많지만 금년은 특별히 결혼 25주년을 맞는 해이어서 감회가 새롭다. 금년도 지내온 것 생각하면 모두 은혜 아닌 것이 없고 가지가지 일들 모두 감사하지만 특별히 지난 늦은 봄, 독일과 동유럽을 무사히 다녀오게 해주신 주님의 은혜를 감사드린다. 폴란드․체코․슬로바키아… 냉전 체제시절 한국인들에게는 “동구권”이라는 이름으로 닫혀있었던 곳들이다. 또한 아름답고 푸른 다뉴브(Danube)강(江)이 흐르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이들 유럽국가에도 이제 관광의 봄바람이 불고 있다. 청년 때에 돌아본 서유럽과는 또다른 정취가 느껴지는 역사가 살아 숨쉬는 유서(由緖) 깊은 땅이다. 동유럽을 다녀오면서 비록 몸은 고단했지만 많은 감명(感銘)을 받고 돌아와서 이 감동을 잊기 전에 오래 동안 간직하기 위해서 여행기를 정리해 보았다.
Ⅱ. 프라하의 봄이 있는 동유럽으로!
1. 황태자의 첫사랑 하이델베르그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독일 프랑크푸루트 공항에 내려서 여장을 풀고 하룻밤을 보낸 후 첫 관광으로 하이델베르그에 갔다. 네카 강(江)위에 걸쳐있는 칼 데오도르 다리 근처 에서 하이델베르그 성(城)을 잠시 보고 시내로 내려와서 성령교회 쪽으로 가서 교회와 시청 건물 관광하고 뉘렌 베르그로 향했다. 이 곳은 아들도 작년 여름에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온 후 얘기 들은 곳이어서 더욱 친근감이 갔다. 고색창연한 성(城)의 전경과 근처의 풍광이 어우러져서 나그네의 마음을 설레게 만들고 그 속에 푹 파묻혀서 세월을 잊어버리고 싶은 느낌이 들었다. 다음 목적지인 체코 프라하를 향해서 주위의 경치를 감상하면서 계속 달린다. 중간에 뉘렌베르그에 잠시 들렸는데 아담한 분위기가 마음을 편하게 하는구나. 프라하로 가는 연변(沿邊)의 도로는 우리나라의 국도(國道)와 같이 2차선으로 산(山)은 거의 보이지 않고 구릉 같은 곳이 연속이고 중간 중간 호밀밭이 보였다. 서유럽 같이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분위기가 아니고 그저 평범한 시골집들이 무척이나 정겹고 평화로우면서 친근하게 느껴졌다. 마을마다 있는 교회도 사진에서 늘 보던 풍경 같아서 반가웠다. 호밀 밭 사이로 민들레가 흐드러지게 피었다. 웬 민들레가 그렇게도 많은지 동유럽 전체가 민들레 동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민들레가 많았다. 추운 겨울을 견디고 강인하게 피어오르는 민들레를 보면서 소련의 압제를 대항하여 일어난 “프라하의 봄”을 느꼈다. 프라하의 호텔에서 숙박 했는데 새벽에 일어나 보니 공기도 맑고 경치도 좋았으며 흡사 스위스 시골 산장 같아서 기분이 상쾌했지만 우리나라 보다 날씨가 약간 쌀쌀하게 느껴졌다.
2. 프라하의 봄 체코의 수도(首都) 프라하는UNESCO의 세계 문화와 자연유적지 목록에 추가 되었고, 2000년에는 유럽연합(EU)에 의해 “올해의 유럽 문화 대도시”로 명명 받은 9개의 도시 중의 하나 이며 유럽에서 중세의 모습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다는 도시이기도 하다. 아침 일찍 프라하성부터 관광을 시작하게 되었다. 프라하의 서쪽 흐드라찬스케 언덕에 위치하고 있는 프라하성은 9세기 경 처음 건립된 이후, 지금까지 통치의 중심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시내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카를 4세가 집권하고 있던 14세기 경에는 프라하성에 대한 공사가 대대적으로 이루어졌으며, 1541년 대화재 이후 다시 개축, 합스부르그 가의 성(城)으로도 사용되는 역사를 지닌 곳이다. 그리고 지금도 제2정원과 면한 한쪽 부분이 대통령의 집무실로 사용되고 있다. 대통령 집무실을 바라보면서 유유히 성내(城內)에 산재한 성 비타 성당, 구(舊)왕궁, 성(聖)조지 바실리카와 수도원등을 살펴보았다. 다음으로 카를 교에 갔다. 카를 교는 1357년 카를4세에 의해서 세워졌으며, 볼타강을 가로 지르는 가장 오래된 다리로서 천문시계, 프라하성과 함께 프라하의 명소로 자리 잡고 있다. 길이 516m,폭9.4m의 다리 양쪽으로는 30개의 성상(聖像)들이 놓여져 있다. 카를교는 차량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편하게 산책을 즐길 수 있다. 또한 거리의 악사들과 기념품을 파는 상인들로 항상 북적된다고 한다. 내가 간 날도 여전히 북적이고 있었다. 카를교 위의 성상들 중에서 가장 오래되었으며 유일하게 청동으로 제작된 “성 요한 네포무크”의 성상이 있다. 성상 아래의 부조(浮彫)는 사람들의 손길에 의해서 노랗게 변해 있는데, 이는 이곳에 손을 살짝 대고서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얘기가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와 아내도 동심(童心)으로 돌아가서 이 곳에 살짝 손을 대고 다시 이곳에 올 수 있도록 기원해 보았다. 구(舊)시가지 광장을 북쪽으로부터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아서면 천문시계가 있다. 구(舊)시가지 청사와 탑의 한쪽을 장식하고 있는 천문 시계는 그 특이한 모양으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청사(廳舍)탑에 처음으로 시계가 설치된 것은 15세기 초였다. 이후 1490년 하누슈라는 시계공에 의해 다시 개조되었으며, 수차례 수리되어 1552년 에서 1572년 사이에 타보르스키에 의해서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되었다고 한다. 상․하 두개의 원으로 구성된 이 시계는 정확한 시간을 알려주기 보다는 지구를 중심으로 도는 태양과 달의 궤도를 모방해 나타내고자 했단다. 매시 정각이면 죽음의 신이 줄을 당기면서 12사도들이 창문을 열고 모습을 비춘다. 이 광경을 보기 위해서 관광객들이 어디서 그렇게 많이도 왔는지 온 광장이 비빌 틈이 없을 정도였다. 유럽 문명이 모두 기독교 문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은 어디를 가나 예수님, 12사도 등과 관련이 있어서 기분이 좋다. 이어서 바츨라프 광장으로 이동 했는데 이 곳은 길이가 750m 폭이 60m에 달하는 광장이라기보다는 대로에 가까운 곳이다. 바츨라프 광장은 프라하의 중심으로서 중세시대엔 프라하의 말시장이 형성되었던 상업의 중심지였다. 광장의 윗쪽으로는 신 르네상스식의 웅장한 국립박물관이 서있고, 광장의 중앙에는 성 바츨라프의 기마상이 있으며, 멀리 무즈택 광장까지 이어진다. 1968년 “프라하의 봄”이라고 불리는 체코인들의 자유, 인권, 민주를 향한 외침이 이곳에서 시작되었단다. 해가 기울어지고 나면 길을 따라 하나, 둘 아름다운 가로등과 조명등이 켜지면 100만불짜리 프라하의 야경이 시작된다는데 다음 일정 때문에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부루노를 거쳐서 폴란드로 향한다. 나는 여러차례 관광을 다녔지만 갈 때마다 늘 맑게 개여서 행운이 따른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프라하 관광에서는 관광 중에 비가 약간 오고 난후 무지개가 떠서 모처럼 아름다운무지개를 바라보니 소년과 같이 가슴이 설레고 기분이 상쾌해졌다. 부루노에서 폴란드로 가는 아침, 맑게 개이고 햇살이 깨끗하고 주위경관이 참으로 아름답다. 끝없는 구릉지의 숲, 호밀밭, 민들레… 아름답고 낡은 첨탑의 교회, 세월의 이끼가 그대로 있는 고성같은 집들… 흡사 세월이 중지된 것만 같은 착각을 느끼게 한다.
3. 인간 도살의 현장, 아우슈비츠(Auschwitz) 생각할수록 끔찍스럽다. 어쩌면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highlight)인지도 모르겠다. 한나절에 걸쳐서 아우슈비츠 내부를 관광하는 동안 가이드의 설명을 들어면서 속이 메스꺼웠다. 너무 참혹해서 내부는 사진도 찍을 마음이 안나서 관람하고 나온 후 건물배경 한장만 찍었다. 2차대전 말기 폴란드의 고도(古都)크라쿠프 시 인근에서는 날마다 검은 연기가 타올랐다. 이곳은 “굴뚝을 통해서만 빠져나갈 수 있다”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독가스로 죽어간 수용자들이 알몸으로 화장되어 한 줄기 연기로 “굴뚝을 통해” 수용소를 벗어나는 현장이었다. 독일이 아우슈비츠를 점령한 후 수용소를 만들기는 1940년 초였단다. 처음에는 폴란드의 정치범을 주로 수용했지만 차츰 일반 죄수보다는 전쟁 포로와 유태인을 대거 수용했다. 나치스는 유럽 전 지역에 흩어져 살던 유태인들을 색출하여 광적으로 죽였다. 세계 2차 대전이 끝날 무렵 약600만명의 유태인이 살해 되었다는데 아우슈비츠에서 죽어간 유태인은 약10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용소에 들어서니 입구에 아치형 문(門)에 “ARBEIT MACHT FREI" (일을 함으로써 자유로워 진다)라는 기만적인 구호가 적혀 있었다. 유태인들이 거주하던 침실은 흡사 마굿간 같았고, 여자들의 머리카락을 싹둑 잘라 이것으로 카펫을 짠 것과 산더미처럼 쌓인 머리카락, 참 섬뜩한 생각이 든다., 신발, 가방 주방용품 등이 당시의 참혹한 모습을 연상하게 하였고 수용소 내 곳곳에 당시의 모습을 찍어둔 사진과 자료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당시 유태인들의 생활용품을 보면 상당히 고급스럽게 보였는데 그렇게 인간 이하의 처참한 생활을 한 것을 보면 그 고통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이 아유슈비츠에서 상당수의 유태인들이 수용소 건설에 투입되어 중노동을 하면서 수없이 죽어 나갔고 또 멀건 죽 같은 것 조금 주고 노동을 시켰기 때문에 굶어 죽은 자도 부지 기수였다고 한다. 그러나 수용소에 근무하던 독일인들은 일부 유태인을 노리개로 삼는 등 잔인하기 그지없는 악랄한 행위를 서슴지 않은 현장도 보게 되었다. 가스실 옆 조그마한 공터 같은 곳에서 과거에 유태인을 교수형에 처했던 자리에서 2차대전 후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책임자가 역시 그 자리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니 참 역사의 아이러니(irony)가 아닐 수 없다. 마지막으로 가스실에 가보니 역사책에 기술해둔대로 흡사 샤워실같이 꾸며져 있었고 위장된 이 샤워실에서 아까운 생명이 수없이 죽어져 갔다고 한다. 어떻게 인간이 이 처럼 잔인 할 수 있을까? 관광객중에는 유태인들도 있었다. 그들의 가슴은 얼마나 더 아플까? 1947년 유네스코는 이 수용소를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포함시키고 영원히 잊지 못할 장소로 지정하였다. 누군가의 말처럼 “아우슈비츠보다 더 무서운 것은 아우슈비츠를 잊는 것이다”라는 말이 생각났다. 돌아오면서 유태인들이 왜 그렇게 참혹하게 죽어 갔을까 하는 의문이 계속 머리속을 맴돌았다.
4. 폴란드 제2도시 크라쿠프의 소금광산과 바벨성 크라쿠프는 옛날에 폴란드의 수도였고 폴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로 체코 근처에 국경을 두고 있으며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독일군에게 점령되었지만 사적(史蹟)등의 파괴는 면할 수 있어서 많은 문화 유물이 남아있다. 먼저 소금광산으로 향했다. TV에서 세계여행에 소개된 소금광산은 오랫동안 무척 가 보고 싶었던 곳이었다. 아우슈비츠의 끔찍한 관광을 마치고 좀 얼떨떨한 기분으로 풍광좋은 길을 따라 소금광산으로 향했다. 천오백만년전의 바다가 지형변화를 일으켜 지금의 소금광산이 되었다고 한다. 또한 소금광산을 발견했다는 깅가공주의 전설도 재미있다. 벨라4세의 딸인 깅가공주가 시집갈 때 지참금도 없이 반지 하나만 가지고 폴란드로 가는데 헝가리의 국조(國鳥)인 까마귀가 공주의 반지를 물고 가다가 떨어뜨려 굴러가는 반지가 멎은 다음, 그 반지를 다시 공주에게 돌려주고 까마귀는 돌아와 반지 위에 앉아 있었다는데 그 자리가 소금광산이란다. 원래 바다 밑에 있어야할 소금이 자연의 신비로운 조화로 땅속 전체가 소금이라니까 참 신기하다. 묵직한 나무문을 열자 갱도사이로 몰아 치는 바람이 시원하다기 보다는 스산한 느낌이 들고 희미한 불빛이 회청색의 거친 바위벽과 천장에 불빛을 드리운다. 378개라는 통나무 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통로 곳곳에 수백년동안 만들어 놓은 각종 소금 조각상들을 보면 더욱 신비스러워진다. 특히 17세기 광원들의 손으로 만들어진 소금 제단은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상으로 조각되어 있는데 광원들은 이곳에서 일과를 시작하여 “오늘 하루도 무사히 살아서 갱도를 나가게 해달라고” 기도했다고 한다. 무명 광원들의 위대함은 지하 101m에 “성 킹가 대성당”에서 절정을 이룬다. 채굴작업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생긴 엄청나게 큰 공간에 자신들의 안전을 위하여 대성당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발코니, 계단은 물론 팔각형으로 고르게 새겨진 바닥 타일까지 소금이란다. 최후의 만찬, 예수탄생 등의 장면 등 많은 조각들이 있어서 경탄을 자아내게 한다. 이곳을 관광케 하신 주님의 은혜를 감사하면서 앞으로 더욱 주님의 일을 많이 하게 해달라고 기도드렸다. 흡사 대리석 같은 것이 모두 소금이란다. 지하에는 음산한 듯한 바람이 불어서 오늘은 이상하게 어두운 관광을 주로 하는구나 하는 마음도 들었다. 소금광산의 관광을 마치고 바벨성으로 갔다. 바벨성은 크라쿠프 남쪽 비스와강 상류에 위치하며 성의 역사는 9세기 초부터 시작된다. 성 내부에는 중세 때의 갑옷, 검, 장신구, 초상화 등을 전시하고 있다. 화재이후 바벨성은 1502년부터 1536년까지 르네상스 양식으로 개조되었다. 주변에는 큰 정원이 있고 문 4개와 기둥이 떠받치고 있는 기둥이 있다. 그중에서 바벨 대성당은 세번째 고딕양식의 건물이다. 20개의 예배당 가운데서도 황금색의 돔으로 덮힌 지그문트 예배당은 르네상스 양식의 아름다움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아름다운 건물이다. 잠시 중세에 빠져드는 느낌이 든다. 크라쿠프에서 멋있고 분위기 있는 고성(古城)지하와 같은 식당에서 민속춤도 구경하면서 석식을 즐기고 이튿날 아침 슬로바키아를 통과하여서 반스카를 경유하여 헝가리의 부다페스트로 간다. 반스카는 고풍스러운 중세의 작은 도시였는데 정겹고 예쁘게 느꼈다.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의 공통점은 국토 전체에 민들레가 엄청나게 많고, 길이 좁고 어딘가 좀 어두운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거의 모든 가정에서는 창문에 흰색 레이스 커튼을 했는데 무슨 이유인지 궁금하다.
Ⅲ. 다뉴브 강(江)을 따라
1. 부다페스트의 밤 하루 종일 달려서 저녁이 다되어서야 드디어 다뉴브강이 있는 부다페스트에 도착했다. 호텔에 여장을 풀고 다뉴브강과 시내 야경(夜景)을 보러 나갔다. 호텔에서 우선 부다페스트의 지도를 받은 후 콜택시를 타고 가장 중심지인 에르제베트 다리로 향했다. 프라하의 야경을 못본 아쉬움을 만회하기 위해서 서둘러 나선 것이다. 가이드의 말과 같이 헝가리(Hungray)라고 하면 우선 영어의 hungry와 비슷한 발음 때문에 배고픈 나라라는 인상과 수도(首都)인 부다페스트 역시 pest라는 단어가 떠올라 가난하고 병균이 와글와글하는 곳 아니냐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헝가리는 1000년의 역사 속에 숱한 이민족의 침략과 지배를 당하는 고통을 겪었지만 여전히 그들만의 독자적인 문화와 언어를 잘 지켜나가고 있다고 한다. 부다페스트는“동유럽의 파리” “도나우의 진주”라고 불릴만큼 아름다운 도시이다. 1849년 세체니 다리가 개통되고 이후 오부다, 부다, 페스트 3개의 도시가 통합되어 지금의 부다페스트가 되었단다. 이름 그대로 도나우강에 비친 환상적인 도시가 바로 부다페스트라고 느꼈다. 지난번 아우슈비츠를 비롯한 좀 어두운 관광지를 거쳐 온 탓인지 헝가리는 국경을 통과 하면서 더욱 아름답고 활기차게 느껴졌다. 아내와 더불어 에르제베트 다리를 산책하는데 야경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거저 감탄밖에 나오지 않는다. 도나우 강변에 비친 아름다운 고성(古城)들과 국회의사당, 마차시 성당, 어부의 요새 등등이 어우러져서 나그네의 마음을 한없이 설레게 만드는구나. 천천히 에르제베츠 다리를 왕복하고 시내 중심가로 들어와서 구경을 하고 카페에 들어가서 헝가리의 유명한 Tokai라는 wine을 맛보았다. 호텔로 돌아오는 택시를 탔는데 meter기를 조작하여 갈 때 요금의 배(倍)로 요구하였는데 무조건 지불할 수 밖에 없었고 나중에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헝가리에서 지갑채로 잊어버리지 않으면 다행일 정도로 아직은 개인적인 시내관광이 안전하지 못하다고 한다.
2. 드디어 부다페스트의 날은 밝아오고 어제 밤에 보았던 부다페스트를 오늘은 낮에 보게 되어 더욱 들뜬 마음이다. 부다페스트는 도나우강이 남북으로 가로질러 서쪽이 부다, 동쪽이 페스트로 나뉘어 있다. 부다 지역은 산이 많고 예로부터 왕궁이 있어 고급주택가로 형성되어 있었다. 페스트 지역은 넓은 평지로 번화가와 상업지구로 되어있다. 먼저 부다 왕궁으로 간다. 날씨도 얼마나 좋은지? 관광 때마다 좋은 일기를 만나는 것 참으로 행운이 일이 아닐 수 없다. 부다 언덕의 남쪽 끝에 위치한 이 왕궁은 벨러4세에 의해 13세기 후반 처음 지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투루크에 의해 파괴당했다가 17세기 때 바로크 양식으로 재건되었단다. 현재는 3개의 박물관과 미술관으로 쓰이고 있다고 한다. 강건너 페스트에서 바라보는 왕궁의 야경은 도나우강, 세체니 다리와 어우러져서 비길 데 없는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다고 하는데 어제밤에 보고 오늘 아침에 다시 보니 더욱 반갑다. 강 건너 보이는 국회의사당은 런던의 국회의사당과 종종 비교 대상이 된다고도 하는데 분위기가 비슷하게 느껴지며 돔 위의 첨탑 등 전체적으로 참 아름답게 느껴진다. 다음으로 마차시 성당을 가본다. 1269년 벨러 4세 왕에 의해 초기 고딕 양식으로 처음 지어졌고 15세기 마차시 1세 왕에 의해 성당의 첨탑이 증축되면서 그의 이름이 성당에 붙여졌다. 규모는 그다지 크지는 않지만 역대 왕들의 대관식이 거행되던 곳인 만큼 중요한 위치를 차지 하는 성당이다. 마차시 성당을 보호하기 위해 19세기 후반에 축조된 성곽이 어부의 요새이다. 원래 중세 때부터 이 부근에 어부들이 많이 살았으며 큰 시장이 있었다고 한다. 헝가리 국민들이 민병대를 조직해서 왕궁을 수호하고 있을 때 이 성채는 어부들이 지켰다고 하여 이러한 이름이 붙여지게 되었다고 한다. 독특한 모양의 쌍둥이 같은 뾰족탑이 인상적인 성채이다. 어부의 요새와 함께 부다페스트를 대표하는 상징물로 자리 잡은 것이 세체니 다리이다. 내려오면서 거닐어 보았는데 이 다리는 도나우강을 가로질러 부다와 페스트를 연결하는 최초의 다리로서 1849년에 개통 되었단다. 부다와 페스트의 합병을 주도한 인물이며 헝가리인들에게 위인으로 추앙받는 세체니 백작을 기리기 위해서 그의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이 다리의 양쪽 입구를 지키고 있는 네 마리의 사자상은 그 자태가 너무나 아름답고 완벽하여 흠이 없다고 하였으나 한 시민이 혀가 없는 것을 발견하여 “울지 못하는 사자”라고 불리운다고 한다. 이것저것 볼거리가 많지만 이곳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세체니 온천을 빠질 수 없어서 바쁜 일정 중이지만 오전 관광을 서둘러 끝내고 온천하러 갔다. 헝가리는 온천의 나라로서 전국에 약1,000개의 온천이 있다고 하며 온천에 몸을 담그는 것 자체가 의료적인 치료로 행해진다고 한다. 세체니 온천은 외관이 흡사 저택이나 왕궁같은 분위기이다. 우리나라와 같은 형태의 온천이 아니라 수영장과 같은 스타일이다. 나는 수영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 온천에서 수영을 하니까 말할 수 없이 기분이 상쾌하다. 바쁜 관광중이지만 온천 관광 또한 묘미가 있는 것 같다. 느긋하게 있고 싶지만 또 가야하는 것이 아쉽다. 이제는 음악의 나라인 오스트리아 비엔나로 간다.
3. 왈츠의 도시 비엔나 헝가리에서 비엔나로 향하는 도로는 이제까지의 2차선에서 4차선으로 바뀌고 끝없는 평원과 야트막한 구릉지(丘陵地)의 연속인데 이때까지와 달리 민들레 밭이 적어지고 점점 유채꽃 밭이 늘어 간다. 참 이상하다. 이쪽은 유채꽃을 많이 피우는지? 아무튼 도로 양쪽의 정경이 아름답고 비엔나가 가까울수록 건물도 좀더 깨끗하고 분위기도 선명한 느낌이 든다. 우선 셀부룬 궁전부터 관광을 시작한다. 베르사이유 궁전과 더불어 유럽에서 가장 화려한 궁전중의 하나로서 1569년 막시밀리안 2세에 의해 처음 건축되었고 1696년 건축가 베르나드 피셔 본 에라흐에 의해 재건축되기 시작하여 1700년에 완공되었다고 한다. 이 궁전에는 1,441개의 방이 있고 화려한 로코코 양식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각 방에는 여왕이 수집한 각종 가구, 자기제품 등이 전시되어 있다. 궁전 앞으로 펼쳐진 정원은 넓이만 1.2㎢에 이르도록 넓어서 한참 동안에 걸쳐서 돌아보게 되었다. 프랑스 파리의 베르사이유 궁전과 비교 되지만 그 화려함과 정원의 아름다움을 섣불리 비교하기가 힘들다고 하는데 아름다움이 막상막하인 것 같다. 다음으로 시내 이곳저곳을 살피면서 유태인의 회당을 둘러보고 사이 길로 나가서 슈테판성당에 도착했다. 이 성당은 오스트리아 최고의 고딕식 성당으로 12세기부터 역사가 시작되는데 처음 지어질 때에는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건축되었지만, 본당의 경우는 1359년 고딕 양식으로 재건축되기 시작했단다. 이어서 비엔나 최대 번화가인 케른트너 거리로 간다. 도로주변으로 쇼핑센터, 음식점, 각종 상점 들이 몰려 있는데 특히 사람들이 노천카페에 많이 앉아 여유를 즐기는 모습이 부럽다. 계속해서 국립오페라 극장, 미술사 박물관, 자연사 박물관등의 명소를 돌아보면서 어느덧 독일 뮌헨으로 떠날 준비를 한다.
4. 뮌헨으로 가는 길 비엔나에서 뮌헨으로 가는 길에 사운드 오브 뮤직의 배경이 되었던 곳이라는 호숫가에서 잠시 머물렀는데 멀리 보이는 알프스산의 눈 덮인 산봉우리와 초원 호수 등이 어우러져서 장관을 이루었다. 밤늦게 도착한 곳의 지명은 Nordlingen이고, 호텔 이름은 Klosterle Hotel 인데 아담하면서도 시설도 효율적으로 해놓아서 분위기가 참 좋았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호텔을 감싸고 있는 성(城)을 돌아보고 망대에도 올라가 보았는데 참 운치가 있고 고풍스러워서 몇백년 전 시대로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너도밤나무가 많은 뮌헨에서 숙박한 후 서둘러서 프랑크프르트로 향한다. 공항가는 길에 잠시 뢰머 광장과 시청사를 둘러본다. 이곳은 푸랑크프르트 구시가의 중심지이며 중세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곳으로 항상 많은 관광객들로 붐비는 곳이다. 최초의 박람회가 열린 장소이기도 하며 현재는 각종 문화 행사가 개최된다고 한다.
Ⅳ. 예수만 섬기는 우리집
“사철에 봄바람 불어있고 하나님 아버지 모셨으니..........″
우리 가족이 가정 행사 때는 빠뜨리지 않고 부르는 은혜로운 찬송이다. 가사도 은혜롭고 곡도 부르기 좋다. 평생을 이 찬송과 같이 예수만 섬기며 감사하면서 살아왔다. 태어나서 부모님 슬하에서 살다가 결혼하여 아내와 가정을 꾸민지도 어느덧 25년이 되었다. 곱고 예쁘던 아내도 어느덧 중년이 되었고 이제는 우리 아이들의 혼사를 생각할 연령에 도달했다. 이번에는 다른 여행지 보다 특별히 많은 것을 체험했으며, 동유럽인들이 비록 경제적으로는 미국이나 서유럽보다 못하지만 찬란한 문화가 꽃피고 있고 인간다운 여유룰 가지고 살고 있다고 느꼈다. 그렇지만 동유럽의 교회들에 성도가 차고 넘칠 때는 나라도 강했지만 아름답고 멋있는 교회에 관광객만 많고 성도가 적은 것이 안타깝다. 우리나라 곳곳에 교회가 세워지고 힘차게 선교할 때 나라도 부강해지리라고 확신한다. 다시한번 동유럽을 관광할 수 있는 여건과 무사히 다녀오게 해주신 주님께 깊이 감사를 드린다. |